ANI&COMIC2013.09.06 16:19

 

 


그는 비행기와 관련된 집안에서 성장했고

그가 그린 거의 모든 이야기에서 비행과 관련된 소재나 이야기를 항상 집어넣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아니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자본주의 사회하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매체를 지배하는 돈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흥행에 재주가 있었어요.

그냥 있었던게 아니라 그때까지 있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자기가 자기 기록을 연거푸 갱신할정도로 재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흥행만 잘했냐면 그것도 아니예요.

그의 작품은 여기 저기 불려다니면서 이런상 저런상 돌아가며 탔는데

그게 그냥 국내상이 아니라 국제상들일정도로 평단의 평가또한 좋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그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해왔습니다.


애니로 만들 생각이 없었던 나우시카는 코믹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 다른 이야기로 애니화 되었으며

라퓨타는 처음부터 아예 흥행만을 철두철미하게 노리고 만들다 시피 했죠.

키키도, 토토로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센과 치히로도.....솔직히 저는 그가 진짜 그리고 싶었던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가 그리고 싶었던 본능에 조금 충실할 수 있었던 두 작품은

붉은 돼지와 원령공주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그가 정말 말하고 싶고 그리고 싶은 주제를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 둘째가 비행에 대한 동경.....이라고요.


사실 첫번째인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는 그는 원했던 바를 어느정도 풀어내어 욕구를 해소했다고 봅니다.

코믹스판 나우시카를 보고, 그리고 다시 원령공주를 보면

그가 자연과 인간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갔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따라갈 수가 있거든요.

자연과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흥행과 동떨어져있지만은 않았기에 어떤 형태로건 욕구를 분출 해 낼수 있었지 싶어요.

 

하지만 두번째인 비행에 대한 동경을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나우시카에서도 주인공 나우시카는 실컷 날라다녀요. 하지만 작품내에서 날라다니는것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목적이 아니예요.


비행에 대한 미야자키의 동경이 구체적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은 제 생각엔 명탐정 홈즈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부터였다고 봅니다.

국내에도 방영된 바 있는, 홈즈와 왓슨이 개로 나오는 이 애니의 일부 에피소드는

비행 그 자체에 매달리는 캐릭터들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때부터 저는 그가 비행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그 무엇을 그리고 싶어했었다고 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주인공 파즈가 만들고있던건

다름아닌 자기 비행기였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라퓨타가 있다고 하는 저 높은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비행기를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던 소년 파즈야말로 바람 불다의 주인공 지로의 오리지널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저 위에서 제가 예외로 놓았던 작품중 하나인 붉은 돼지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날아다니는 돼지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가 왜 돼지인지. 파시스트들 속에서 홀로 어떻게 사는지를 유쾌하게 그리는데 중점을 두고있고

난다는 행위 그 자체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례적으로 중반부 상당부분을 새 비행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쓰고있는데

정작 그것을 설계하고 꿈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작품에선 들어갈 수가 없었죠.


애초에 기획단계서부터가 이런 장편 만들려고 한게 아니었고..

순수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취미가 어쩌다보니 변질되고 바뀌어 흥행작이 되어버렸을 뿐,


미야자키가 진실로 그리고 싶고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여전히 다 못하고 분출되지 못한 채 앙금처럼 남아있었지 않나 싶어요.

오죽하면 On Your Mark같은것까지 그렸겠습니까 (........)

또한 89년작이었던가요. 마녀배달부 키키에도 지로의 선배가 나오죠.

키키에게 작업걸던(.....) 톰보 또한 자기가 스스로 만든 비행기를 완성시켜 하늘을 날게 하는게 꿈인 소년이었잖아요?

빗자루로 실컷 날라다닐 수 있던 키키와는 달리 열심히 비행기 설계하고 작업해서 만들어 하늘을 날게 하고 싶었던

톰보 소년이야말로 바람 불다의 지로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선배 캐릭터였을 겁니다.

 

[바람 불다]는 말하자면 뻘소리같은 작품입니다.


거장이라는 딱지 때고, 흥행이라는 딱지 때고,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 다 떼고,

그냥 수십년전부터 자기 하고싶었던거, 그리고 싶었던거 그냥 그려서 구현화시켜보고 싶었던 사람이

오랜 인내끝에 자제심 다 내던지고 인지도니 체면이니 책임이니 다 내던져 버리고


기회 잡아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소리 맘껏 해보는 그런 분출구같은 작품말이죠.

극중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는 그래서 여태까지 등장했던 다양한 미야자키표 캐릭터의 종합편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라퓨타의 파즈가, 붉은 돼지의 피코로가, 심지어는 마녀배달부 키키에서의 톰보까지도 녹아들어있는...

 

 

문제는 그게 그리 쉽게 떼어지고 버려지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거대한 존재였고 이미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는 그라는 개인이 감당하기 벅찰정도로 커져버렸죠.

그래서 그가 아무리 안간힘을 쓰고 변명을 하고 이런저런 해명을 해도 사람들에겐 그게 닿지를 않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사건들, 주변국과의 이해관계, 가해국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런 온갖 것들로 인해

그가 평생 원해왔던걸 참다참다 그냥 확 풀어놓고 자유롭고 싶음에도 주변에서 그렇게 두질 않죠.

 

그래서 아마 그는 정말로 지쳤을 겁니다.

그래서 3번째 은퇴선언도 했을테고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더이상 아무것도 만들지 않을 자유를 선택해버리고야 말았죠.

 

 

저 개인적인 생각은 ...그래요.

[바람 불다]라는 작품은 그냥 평가고 뭐고 다 필요없이 순수하게 수십년동안 하고싶은 이야기 못해 병날것같았던

한 늙은 그림꾼의 욕구배출적 작품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아야 하는 작품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그가 해왔던 이야기들과,

그가 만들어 온 작품들과 상충되고 부딪히며 이중적 인간이라 손가락질 하게 되는 단초가 되겠지만


결국은 그도 사람이거든요. 자기 하고싶은거 좀 하고 살고싶은....

다만 너무 존재감이 커서 문제인거지....

 

개인적으로는 한편으로 좀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토미노나 오시이, 오토모, 안노, 린타로들 처럼 자기 하고싶은거 실컷하고 자푹 할대로 이미 다 마친(....) 감독들도 있건만

유독 미야자키가 나이들어 자폭하니 대대적으로 다굴을 놓고있으니 안스럽게 보이기도 해요. 뭐 자업자득이지만...;

 

 

 

그래도 아마 나름 가슴이 후련하긴 할것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고싶었던거 이제 다 하셨을테니 말이죠 (......)

 


그냥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하야오 감독에 얽힌 이런 저런 글들을 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바를 대충 저도 아무 근거없이 적어봅니다.

 


저는 듣보잡 일개 소비자니까 이런소리 막 블로그나 게시판에 적어도 괜찮을득....;


 

Posted by 오럴그래퍼 선배/마루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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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스번칼파랑

    저보다 먼저 보셨나보네요~

    저는 오늘 보러가기고 했습니다~ 기대중 ~~

    하야오 할아버지! 힘내세요!

    2013.09.06 17: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지브리 작품 중에 좋아하는 게 붉은돼지, 온유어마크, 바다가 들린다, 원령공주, 이웃집 야마다군.. 정도인데
    원령공주는 문명이 자연을 '개간'하는 과정에 대한 수업 때 써도 되는 작품이고
    붉은 돼지는 뭐, 1930년대 저 할배의 빠심 가득한 작품이라고 봅니다만
    파시스트 이야기는 지나치고 있었네요.

    전반적으로 글의 내용에 동의합니다. 히히
    다만 기술자와 기술은 중립이란 말엔 동의를 하지 못하겠어요.
    아직 어른이 아닌 시야 좁은 아해라 그런지 몰라도요.
    아마 아니보지 싶네요.

    2013.09.06 2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맞는 분석같아요

    날카로운 분석이네요, 저는 감독이 자기 자신과 지로를 동일시하고 있다고 보이고
    일본 제로센 제작자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면죄부를 주고 있는 거 같네요
    당시에 일본 기업들이 정부에 요청해서 조선에서 노동자들을 싸게 부려먹을 수 있게 해달라, 아니면
    일본에 데려와서 저임으로 일시키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로비의 결과로 불러온 조선인 노동자들을
    일본인보다 나쁜 조건에 투입시켜 죽도록 일시키면서 기본적인 임금이나 식사도 제공하지 않고
    심지어 구타로 죽이거나 한 경우가 다발하고 있었고, 특히 비행장 건설이나 항공기 부품 제작에서
    일본이 2차세계대전으로 돌입하던 때 조선인들이 대거 징용당해 일본에서 혹사당하다 죽고
    운나쁘게 원폭에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감독은 그 시기에 제로센 부품 납품하는
    집안 아들로 부유하게 자라면서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다'
    '가족을 지키려는 자기 신념에 충실했던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전쟁의 피해자다'
    '그 시대 속에서 자기 소명을 위해 일하는 게 뭐가 나빠? 일본이 나쁜 건 전쟁에 진 것이다'같은 생각을
    게속 키워왔던 거 같아요, 결국 이 영화는 자기 가족과 자신의 처지를 제로센 제작자라는 한 인물에
    투영해서 실제 이상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해주는 영화...

    2013.09.06 21: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아버지 관련 이야기라면 저도 꽤 인상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 바로 로드투퍼디션... 이었죠.
    일단 뭔가 거품이 빠진, 순수하게 하고 싶은거 늘어놓은 영상계열이 의외로 보는 재미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취향이라서 기회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기대 안하고 있었는데 포스팅 덕분에 급 땡기는군요... 특히 평가고 뭐고 나이든 그림쟁이의 욕구분출적 작품... 이라는 커멘트에서 매우 관심이 갑니다.)

    2013.09.09 1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