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RA2013.07.22 08:17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Pattern | 1/160sec | F/1.8 | +0.33 EV | 85.0mm | ISO-100 | Off Compulsory

 


일에 너무나 치여서(최근 계속 야근중...)

아주 잠시 도피성으로 끄적여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세운상가 근처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초4때 정도에 서초동으로 이사가서 또 한 10여년 살다 분당으로 갔는데


사진이란 취미를 가지게 된 다음에

어릴적의 그때 그 기억을 재확인하러 일부러 카메라를 들고

세운상가 옆 인현동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적 기억속에는 그곳엔 참 여러가지가 있었죠.

당장 마굴 세운상가(......)부터 시작해서 인현시장이 있었고

그때 다녔던 영희국민학교와...소풍때마다 갔던 창경원과

자주 갔던 구멍가게와....어릴땐 참 신기했던 오토바이거리...등등...

그런것들을 카메라로 담아봐야지...하는 누구나 할법한 가벼운 동기를 지니고 갔던거죠.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았던 인현동 제가 살았던 곳은

기억속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져있었습니다.


살았던 집은 인쇄소로 바뀌어있었고 시장은 퀘퀘한 냄새만 가득했으며

세운상가도 진양상가도 그 위에 있던 아파트도 완전히 바뀌어 아파트엔 더이상 사람도 별로 안살고 있더군요.

미궁같은 구조인 거기서 술레잡기하면 정말 흥미진진했었는데(......)


그때 그 구멍가게도 없었고 심지어는 모교도 없어져있었어요.

사방치기 하며 놀았던 골목, 술래잡기 했던 언덕, 달고나와 뽁이 아저씨가 있던 전봇대...

모두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굳히곤 손에 들었던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도망치듯 그 동네를 빠져나왔어요.


더이상 머물며 그 풍경을 보다가는, 그리고 바뀐 그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가는

그나마 가늘게 이어져왔던 어릴적의 그 기억들이 덧칠되고 새것으로 바뀌면서 변해버리겠단 생각에..

애써 방금 본 것들을 잊으려 노력하며 그자리를 떠나 그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은 기록이며

또 어떤 분들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해가는 것들과

변해가는 모습들을 계속 담으시지만


그날은 기록보다 더 소중한 어릴적의 그 무엇을 뇌리에 간직하기 위해

사진이라는 취미를 하면서도 사진을 애써 부정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 제 뇌리속에는 떡볶이 국물 더 주시던 을지시장의 아주머니의 모습이,

같이 사방치기하며 웃던 구멍가게 아줌마 아들 얼굴이,

신기하기만 했던 세운상가의 부품가게 모습이 희미하지만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계천골목과 세운상가는 제 어린날 기억속에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건만

이제는 다시갔다가는 그 기억들조차 다 지워질 판국입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변해갑니다.


가끔은...변하기 전의 그모습이 기억속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새 기억으로, 새 사진으로 그것을 덮어쓰기 하지 않는게 오히려 더 좋지 않는가....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진의 기록성은 너무나도 리얼하고 무섭기때문에

한번 담으면 머리속의 기억이 너무도 간단히 소거될것같아 겁이 났던....그 기억이 나네요...

 

 

그날 그곳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가 도망치듯 나왔던 그 기억은

지금도 종종 불현듯 제 뇌리에 되살아나며 저로 하여금 어떤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곤 합니다.

 

 

세상엔 사진으로 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바로 그 한가지를요...

 

 

 


아 도피성 땜빵성 뻘글 끝;;

 

Posted by 오럴그래퍼 선배/마루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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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3.07.22 08:41 [ ADDR : EDIT/ DEL : REPLY ]
    • 헉..여기서 영희국민학교 동문을 뵙나요;;
      지역이 지역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다니면서 독립투사유령이 나온다는 온갖 괴담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삼풍상가도 기억이 생생하고..저희가 명보극장 뒤골목에서도 잠시 살았었거든요. YMCA수영장..? 은 잘 모르겠지만 오성수영장이라고 부르던 수영장이 인현동 살던집 골목 위에 있었고 자주 갔었네요..;

      2013.07.22 08:49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3.07.22 09:46 [ ADDR : EDIT/ DEL : REPLY ]
  3. 갑자기 카페 알파같은 이야기가.. .
    (뭐 사실 그건 기억이라는 것에 관한 주제라)
    꼭 남겨야 남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냥 지금을 찍고 기록하는 거지 과거를 찾는 일은 좀 무망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2013.07.22 09: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좋은 이야기군요.
    담으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군요.

    좋은 추억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이미 변해버린 현재로 바꾸기에 너무 아쉬운게 사실이지요.^^

    2013.07.22 10:18 [ ADDR : EDIT/ DEL : REPLY ]
  5. 비밀댓글입니다

    2013.07.22 10:57 [ ADDR : EDIT/ DEL : REPLY ]
  6. 세운상가 옆 계단을 올라가면...으례 만날 수 있었던, 비디오 판매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런지...;;;

    2013.07.22 10: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세운상가 옆이라고 하니 괜히 맹자가 생각나는.....(응?) 저는 어릴 적 살던 곳이 그리 멀지 않아 가끔 지나가곤 하는데 역시... 많이 변해서 이전 모습이 가물가물하더라고요... 유치원 때 잠깐 단칸방 수준으로 살던 곳은 없어진지 오래구요.....

    2013.07.22 11: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그래서 어릴때 그 풍경과 비슷한 곳을 일부러 찾아가게되는걸지도 모르겠어요. ^^

    2013.07.22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9. 제가 아이 사진을 담지 않는 이유가 선배님의 오늘 포스팅과 비슷한 연유죠... 때로는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의 데이터보다는 약간의 렌더링(?)이 가능한 살짜쿵 불확실한 기억이 더 아름다울 수 있지요. 그런 기억 중 대표적인게 지금의 마눌님과의 첫....;;;;;

    2013.07.22 13:30 [ ADDR : EDIT/ DEL : REPLY ]
  10. 아노니모

    오.. 마이갓!!
    마루토스님이 영희국민학교를 ㅎㅎㅎ
    제가 87년 졸업생입니다. 아... 쓰신글 보니 정말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ㅎ
    여름이면 가던 인현공원 수영장. 묵정공원. 뇌염주사 맞으러가던 보건소..
    불난 세운상가에 동전주스러 가던일. 진양아파트...
    정말 소풍은 창경원으로만 가는줄 알았네요.
    재작년에 찾아갔다 저역시 약간의 실망만 하고 왔네요...
    하여간 정말 반갑습니다.. ㅎ

    2013.07.22 20:34 [ ADDR : EDIT/ DEL : REPLY ]
  11. 박명일

    제가 살던곳은 슬럼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를 알수없는 막개발. 제가 살았던곳은 광주광역시 서구에있는 상무지구죠. 상무대가있었던곳. 포병학교도 있었고.

    2013.07.23 03:01 [ ADDR : EDIT/ DEL : REPLY ]
  12. 쌈박가이

    사진을 찍지 말아야 할때도 있네요.

    사진사가 사진을 찍지 않을려고 애써 도망 나왔다니

    마루토스님은 정말 경지에 다다른 사람 같아요.

    2013.08.02 17:40 [ ADDR : EDIT/ DEL : REPLY ]
  13. 사는건몰까

    제 경우는 다행인게.. 신월7동 출신입니다만,

    10년 후에 가보니까 동네 수퍼 아저씨도 그대로였다는...ㅋㅋㅋㅋ

    2013.08.11 21:05 [ ADDR : EDIT/ DEL : REPLY ]
  14. 너무나 공감되는 글입니다..
    저는 5살까지 서울에 모래내시장근처 살았었는데.. 기억에 남아있던 몇군데 장소를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
    부모님께 여쭙고 찾아갔던 어릴적 추억의 동네는 하나도 없더군요.. 그때 카메라 구입한지 얼마 안되어 많이 찍어두고 싶었지만,
    동일하게 저도 카메라를 거두고 돌아왔네요..ㅎㅎ

    2016.03.24 16:0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