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RA2013.03.28 17:50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Pattern | 1/8000sec | F/1.2 | +0.67 EV | 85.0mm | ISO-100 | Off Compulsory

 


이전에도 아마추어 사진사분들이 빠지기 쉬운 여러가지 함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장비의 함정, 후보정의 함정, 프로 흉내내기의 함정...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 생각하는 함정이

바로 피사체 지상주의라는 함정입니다.


제가 말하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건 대략 이런겁니다.


예쁜 여자를 찍으면 여자분이 예쁘니 사진이 괜시리 더 예쁘고 잘나온듯 보일겁니다.

덜 예쁜 여자분을 찍으면 사진이 잘 안나와보인다 생각하는데, 이때 여자분 탓을 하기 딱 쉽죠.

게다가 다른 분이 찍은 훨씬 예쁜 모델 사진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모델이 안예뻐서 내 사진이 이모양이다."

자신의 형편없는 내공, 안예쁘더라도 개성을 집어낼 능력이 없는 탓은 안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사진의 완성도가 모델의 미모로서 결정된다는 착각을 해버리게 됩니다.

더 예쁜 모델, 더 가슴 크고 키크고 쭉쭉 빵빵한 모델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사진이 맘에 들게 나오면 "그래 이거야!" 하고, 사진이 맘에 안들면 "아 모델이 안예쁘고 가슴도 안커서 사진이 영..."

 


이러한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게 당연히 인물에만 국한되는게 아니죠.


일상의 보통사진 찍어도 전혀 특출나보이지 않는데 비해

전쟁터에서 시체들이 굴러다니는 사진, 교통사고 나서 화재가 나고 피범벅이 된 피해자의 사진,

제 3국에서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은 당연히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이런거에 중독되면 이런거만 찍으러 다니는 분들도 생깁니다.


풍경은 또 어떤가요.

집앞 산책길의 풍경이나 뒷산의 풍경따위 밋밋해보이기만 하고

남들의 멋진 풍경사진과 비교하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대포? 경포대? 이런데 찾아다니기 시작해서

결국엔 핀란드의 오로라라던가, 중앙 아메리카의 블루홀이라던가..

최소한 그랜드캐년이나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정도는 가서 찍어와야 사진이 남달라보입니다.

보통의 풍경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잡아낼 내공이 없다보니, 그런 내공은 키울 생각 자체가 없다보니

더 멋진 풍경이 더 멋진 사진을 만들어준다는 함정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동식물이나 곤충사진은 더하죠.

참새? 오리? 이런걸로는 도저히 남에게 자랑 못하죠.

최소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라던가, 검은목 두루미라던가..

장수하늘소나 비단벌레쯤은 되어야 사진이 잘나왔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사진의 특별함이 오로지 피사체의 특별함으로서 결정된다는 함정에 제대로 빠지기 쉽죠.

내셔널지오그래피 사진전같은거 보고 오신 분들 특히 이 함정에 아주 잘 빠지십니다.(......)

 

사진의 거의 모든 장르에 있어, 이러한 피사체 지상주의...소재 지상주의는

아마추어는 물론이고 때로는 프로들조차도 빠지고 마는 커다란 함정이라고 전 생각해요.

 

그리고 중간에 사진을 그만두게 하는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 피사체 지상주의이기도 합니다.

 

아니...생각을 해보세요.


아마추어 사진사로서 찍을 수 있는 가장 예쁘고 늘씬쭉빵한 모델 다 찍은 담엔 누구를 찍겠어요?

이제와서 보통 사람 찍어봤자 눈에나 차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슨 재주로 전국구, 세계구급 모델을 데려다 찍겠어요?


그랜드캐년의 일출이나 노르웨이 오두막과 함께 담긴 오로라정도까지 찍어본 사람이

집 뒷산 노을이나 볼품없는 절간 찍으며 만족할 수 있을까요?

 


보호조류나 독수리 찍어 "야 난 새를 조낸 사랑해!" 하며 자랑하던 사람이 비둘기나 까치 찍는거 보셨어요?

 

피사체 지상주의에는 결국 "끝"이 있습니다.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더이상 뭔가를 해볼 수 없는 끝이 존재해요.


지구에 있는 풍경 맘에 안든다고 우주를 가겠어요?

일반 모델로는 성에 안찬다고 김태희같은 전국구급, 미란다 커같은 세계구급 모델 데려다 찍을 수 있을까요?

천연기념물 얼추 찍고 난담엔? 쥬라기공원 차려 멸종생물 되살려 찍을건가요?


더이상 찍을게 없어지면 대번에 사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서...


"더 나은 피사체"를 찍음으로서 자기 사진실력도 높아졌다고 착각을 해온 이분들에게 있어

더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겁니다.


솔직히 까놓고 좀 쎄게 말해본다면 말이죠...

제생각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건 애초에 도망을 치는겁니다. 사진 제대로 시작도 하기전에....


당장 자기 사진 실력이 늘지는 않고, 늘었다고 착각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딱 안성맞춤인 함정을 향해 스스로 빠져드는 거예요.

사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재, 피사체의 질을 높임으로서

사진이 늘고있다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겁니다.

모르긴 해도 이 함정에 안빠져보신 분은 아주 드물겁니다. 그만큼 이 함정은 빠지기 쉬워요.

다만 여기서 빠져나오는 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분이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진짜 사진의 고수는, 이 함정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다릅니다.


예쁘지 않은 아가씨를 데려다가도 멋진 사진 잘만 찍어내는게 이런 분들입니다.

그냥 예쁜 얼굴 예쁘게,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하게 찍는데 급급하지 않고

"그날 그 카페엔 슬픔에 젖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녀가 있었다"같은

일상속에서 보이는 슬픔이나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소녀라는 피사체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연출해내는게 이런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사진에 끝이 있을까요?


당연히 끝이 없습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한이 없고...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소재또한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사체의, 소재의 "미"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거랑은 달리 한계가 없어요.

 

풍경은 뭐 안그럴 것 같죠?

전 예전에 사진 처음 시작할 무렵 한 사진 선배가 해주신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자기가 살면서 맨날 보는 동네 사진도 제대로 못찍는 사람이 스위스간다고 거기 사는 사람보다 잘찍을 수 있을거 같냐?"

"니가 사는 동네 사진을 그 누구보다 잘찍게 된다면 그땐 넌 어디가도 최고의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될거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데 5년이 좀 넘게 걸렸던거같아요. (........)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피사체나 장비를 특별하게 함으로서 사진을 특별하게 하는건 솔직히 쉽습니다.

그렇기에 얼핏 특별할 듯, 실은 다른 사람도 다 하는 그리 특별한게 아니예요.

오히려 사진 오래 안찍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나만의 주제, 나만의 테마, 나만의 시선, 나만의 관점, 나만의 개성.....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도망치지 말고 꾸준하게 쭈욱 사진생활 하기 위해서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 최대의 함정을 경계하시는게 어떨까 싶어 또 긴 글 적어보네요....


 

Posted by 오럴그래퍼 선배/마루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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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뭐... 전에 봤는데 공동구매 형식처럼 이쁜 모델들을 소집해서 스튜디오에서 단체로 사진 촬영을 하는 모임도 있더군요... - ㅅ-...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는데... 이쁜 모델을 찍으면 안된다는게 아니라 이쁜 모델만 찍어야 좋은 사진이라는 이상한 강박증처럼 보였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2013.03.29 18: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서연아빠

    얼마전 보급기 하나 구입하고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40대 초반입니다 카메라란 신기한 물건을 보고 기술적인 부분을 찾다가 우연히 님의 블로그를 접하게 되어 많이 느끼고 보고 가면서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몇 자 남깁니다 여타 블로그들보다 맘에 드는 것이 님이 느끼는 님과 피사체와의 소통을 그대로 보여주신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찍어라 이 상황에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닌 여하튼 감사드리고 저도 가능하시다면 이 블로그에 함께 참여를 하고 싶어 글 남깁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2013.03.29 22: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쥬아

    아~~역시 콕콕찝어내시는군요
    와이프 찍고나면 항상생각하고 목끝까지 올라오는걸... 그동안 구입한 장비들때문에 멋적은미소로 참고있는데...모델 탓하는 저의모습 마음 한구석이 찔리네요ㅋ
    역시 고수님의 만투 짱입니다

    2013.03.30 12: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비밀댓글입니다

    2013.03.30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이게 사실 관념에 빠져 허우적 대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축복이라고 봅니다.

      아무나 빠질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이 함정은 저 함정이랑은 달라서..;?

      2013.04.01 08:29 신고 [ ADDR : EDIT/ DEL ]
  6. 좋은 말이네요.

    해외여행을 가면, 유난히 사진을 찍을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동네 산책을 가면 그닥 찍을 것들이 없어 보여요.
    이게 익숙함이 주는 폐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선을 달리 해서 바라보면 동네 사진도 꽤 괜찮은 풍경들이 많더라고요.

    지나가다 별거 아니라고 보던 낡은 집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달동네 폐가 등 말이지요.

    산길도 굽이굽이 좁게 나있는 길목, 이런건 사실 외국인들이 보면 신기해라 하며 찍는 풍경일텐데 익숙함에 빠져 아에 보려고 시도도 못해보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2013.04.01 1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죠. 항상 보는 익숙함때문에 오히려 보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남들이 다 보면서도 못본것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사진사에겐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생각해요.

      2013.04.02 08:41 신고 [ ADDR : EDIT/ DEL ]
  7. 깽알신랑

    올만에 또 들렀습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네요..
    이 봄비가 세상을 좀더 싱그럽게..
    좀더 따뜻하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근데.. 애들말고는 찍을게없는 아빠진사..
    이것두 피사체 지상주의 인가요??
    사실 실력부족 노력부족이 아닌건지..
    ㅠㅠ

    2013.04.02 06: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비밀댓글입니다

    2013.04.02 06:14 [ ADDR : EDIT/ DEL : REPLY ]
  9. 김해운

    좋은 글 가슴에 와닿는 글 간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3.04.14 2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노승일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ㅎ
    많이 생각하고 노력해야겠어요 ~

    2013.04.20 10: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천민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3.04.20 20: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최뚱땡이

    너무 좋은 글입니다. 글에 많은 공감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타 카페에 출처 올리고 글 퍼가도 될까요?

    2013.04.29 14: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초보셔터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2013.05.24 10: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콧물나방

    굉장히 공감하는 글이에요!
    얼마전 궁남지에 다녀왔을때, "궁남지에 있는 빅토리아 수련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빛이 없는 밤에만 피는 꽃인데 수 많은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기위해서 플레쉬를 터트리니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하고 죽어버린데요.
    남보다 더 멋지게,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 마음에 드는 한장의 사진을 찍기위해 노력하는 그 마음도 알지만....
    자연은 자연의 순리에 맞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지켜줘야 하는것도 사람이 해야 할일이 아닌가 하는생각이 드네요 T^T

    2013.07.03 13: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스메나 박

    사진을 보면 일단 그 사진을 텍스트로 풀어보고자 노력한다.
    텍스트를 거꾸로 영상화 할때 그만큼 도움이 된다.

    정말 귀에착 감기네요. 표현이요.

    2013.07.05 03: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쪼온리

    퍼갑니다. 너무귀한정보같습니다. ㅅㅅ

    2014.01.29 11: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김근희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까요?

    2014.06.19 06: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제가 피사체 지상주의 아마추어 사진가였네요..ㅠㅠ 사진 찍는 취미를 계속하려면 하루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 듯..
    일깨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4.08.09 23: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사스가 마형 욕나오게 감사

    2015.06.19 10: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캡틴캐논

    정말이지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읽게 되네요.
    사진작가로서의 마루토스님도 존경하지만 글작가로서도 존경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2016.05.21 22: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잘 보고 갑니다^^

    2017.03.18 07: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