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RA2012.08.17 08:53

 

Apple | Canon EOS 5D Mark II | Pattern | 1/800sec | F/2.8 | +0.33 EV | 24.0mm | ISO-100 | Off Compulsory

 

아마추어 가족 취미 아빠 사진사라고 자신을 규정짓고 정체성을 확립한 제게도

많은 유혹과 욕심은 있습니다. 없을 수가 없죠..저도 사람인데.

 

단순히 무슨 예쁜 모델이라던가 끝내주게 멋진 풍경을 못찍는거? 그런것도 있지만 지금은 그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어제 글(휴가 관련)을 쓰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인데 저의 사진생활은 끝없는 포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보자면...이번 휴가때부터 당장 그렇습니다.

숙소 앞이 산책하기 참 좋은 길이었고..오후날씨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아...해가 살짝 질 무렵에 역광 내지는 역사광에 아들이랑 딸이랑 놓고 사진찍으면 배경도 멋지고 예쁘게 나오겠구나."

날씨를 검색해보니 다음날부터는 구름끼고 비가 온다고 나오더라구요. 지금 아니면 머리속에 그린 그런 멋진 아이들 사진을 못찍을거 같았어요.

 

하지만 포기하고 찍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들과 워터파크에서 놀아주었습니다. 

그리곤 돌아와 창밖의 멋진 노을을 보며 군침을 삼키긴 했지만 노느라 피곤했던 애들 밥을 먹여주고 재웠죠.

 

워터파크에 가지 않고...혹은 아이들 밥을 좀 늦게 먹이고 했더라면 저는 아마 아이들을 데리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아주는걸 택했죠. 멋진 사진따위보단 아이들의 즐거움이 우선이니까요.

 

그 다음날엔 용평리조트내 여름한철 생긴 작은 유원지같은곳엘 데려갔습니다.

꼬마기차도 타고 리틀번지점프도 하고 물풍선도 타고....신나게 놀았죠.

 

 

Apple | Canon EOS 5D Mark II | Pattern | 1/1250sec | F/2.8 | +1.33 EV | 200.0mm | ISO-100 | Off Compulsory

원래 비온다고 했던 날씨였는데 일기예보가 틀리고 날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죠.

"이 푸른 초원에서 해가 낮게 깔릴 무렵 아들이 저 말들을 타는 모습을 사진찍으면 얼마나 멋지게 나올까!?"

 

하지만 기대도 잠시, 아이는 오다가 중간에 보았던 키즈카페 -_-;; 를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실내 키즈카페 들어갔다가는 제가 원하는 사진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깨끗하게 포기하고 데려갔습니다.

 

 

Apple | Canon EOS 5D Mark II | Pattern | 1/125sec | F/8.0 | 0.00 EV | 24.0mm | ISO-100 | Off Compulsory

그 다음날엔 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나오더군요.

"이 푸른 하늘아래서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예쁘게 나올까?" 하는 기대도 잠시.

얼른 짐챙기고 동해로 떠났습니다. ㅠㅠ

아이들에게 바다라는걸 보여주는게 숙소앞에서 사진찍는것보단 훨씬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저런 푸른 하늘은 휴가기간동안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ㅠㅠ)

 

아빠사진사로서 사진생활 한다는게 이렇게 포기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멋진 풍경을 찍을 수 있는거 뻔히 알면서도 카메라 집어넣고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며

빛이 가장 멋진 시간이 다가올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 컨디션챙기다 얼른 돌아가야 할 때도 많고

아이가 정말 신이 나서 놀때일수록 사진기 내려놓고 더 신나게 놀아주는게 사진보다 더 중요하죠.

 

그런데 참 신기하죠?

포기의 연속인데, 행복하기 짝이 없으니 말입니다. ㅎㅎ

 

주말에 아이 집에 놔두고 혼자 늘씬쭉빵 모델사진 찍으러 다니는것보다

늘씬쭉빵 모델사진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는게 더 행복하고

 

정말 멋진 노을사진 찍으러 혼자 남한산성 가는것보다

놀이터에 쪼그려 앉아 아이 미끄럼틀 타는거 지켜보는게 더 행복하더라구요.

(그런건 아이랑 같이 가면 되지않냐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남한산성같은 곳은 모기가 엄청많기땜에 아이 데리고 가면 안됩니다)

 

아마추어 사진사를 자처하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음에도 행복하다는 이 모순된 현실이....저만의 일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부디 지나친 욕심, 멋진 작품에 대한 집착, 허영에서 비롯된 인터넷 사진게시판 일면같은거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시고

아마추어 사진사이기에 비로서 맛볼수 있는

사진을 포기하는 행복을...여러분들도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웃음을 위해서라면...멋진 사진 그까이꺼, 얼마든지 포기하겠습니다. ㅎㅎ

 

 

 

 

 

 

 

 

Posted by 오럴그래퍼 선배/마루토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그렇더군요!

    포기가 포기가 아닌 경우. 살다보면 종종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거.

    포기를 한다는건, 다른 무언가를 선택 했다는 말과 같은 것!!

    이것의 포기가 아니라 다른것의 선택 이겠지요

    행복하자고 하는 사진생활인데 행복해 져야지요~

    2012.08.17 09:14 [ ADDR : EDIT/ DEL : REPLY ]
    • 과연 하임님...제가 썼다 지운 글을 어찌알고 적으십니까;

      제목을 포기라 했기땜에 썼다 지웠지만
      사실은 포기가 아니라 제로섬의 원리대로
      사진대신 아이들의 미소를 얻은거죠..ㅎㅎ

      얻은것을 크게 보아야지, 반대로 잃은것에 대한 아쉬움만 키워봤자
      행복은 저 먼곳으로 날아가버리죠..;

      2012.08.17 09:0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동감합니다.^^

    어느 날 사진 속에서 아이가 혼자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풍경속에 우연히(!) 들어간 그 모습에 그만 가슴이 덜컥 했습니다.
    아이가 어느 날부터 여행을 꺼리기 시작했는데...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 제 욕심을 누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부안에서 숙소인 서천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너무도 멋진 석양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갈등이 오지요.
    그러나 참고 계속 달립니다. 숙소에 가서 탁구도 치고, 노래방도 가고, 놀아주기로
    작정했기에...그러다 보니 제 욕심은 아이가 자고 있는 새벽에 주로 채우게 됩니다.
    덕분에 일출도 보도 매직아워도 경험하고 하는 것이지요.^^

    2012.08.17 10:06 [ ADDR : EDIT/ DEL : REPLY ]
  3. 포기하면 편해, 그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현자들의 말씀이 있잖아요.. 캬캬캬..

    2012.08.17 10:16 [ ADDR : EDIT/ DEL : REPLY ]
  4. 많이 공감합니다^^
    사실 저는 아빠 사진사는 아니지만 가족과 지인들을 주로 찍는 저는 처음엔 가족들 데리고 좋은 사진 찍을려고 제 욕심만 채울려고 했었던 거 같아요~
    여행의 본질을 잊은 거죠~ 즐거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아주 쬐끔 ㅋㅋ 즐거운 순간에는 카메라를 가방 넣을 줄 아는 여유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아요~!!^^

    사진은 흔히 더하기가 아닌 빼기라고 말하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사진의 내용뿐 만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과정도 아마추어에겐 결국 더하기가 아닌 빼기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12.08.17 10:26 [ ADDR : EDIT/ DEL : REPLY ]
  5. 일면이 주는 힘이 상당한가보더라구요.. ^^
    slr은 자게에서만 깔짝거리는 용작가는 감히 꿈도 안꾼답니다~ ㅋㅋㅋ

    2012.08.17 11:18 [ ADDR : EDIT/ DEL : REPLY ]
  6. 아이 세살무렵인가에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긴 개똥철학이긴 합니다만, 기록하는 추억보다는 기억하는 추억이 저는 더 아름답고 가치있으며 오래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세상 뜨기 전에는 잊혀지지 않고, 분실 또는 유실의 위험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 경험에 의하면 같이한 순간이 더 기억하기는 좋더군요.

    2012.08.17 16:07 [ ADDR : EDIT/ DEL : REPLY ]
  7. 세르피코

    진정한 사진생활이 뭔지 알려주시는 글인거 같아요.
    사진을 잘찍으면 좋지만 취미로 하는 것이기에,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항상 장비뽐뿌로 시달리며 제할일을 가끔 뒷전으로 밀어놓곤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ㅠ 하지만 누구나 이런 한때를 겪는거 같구요.
    음... 조금 오버해보면 사진에는 인생철학(?) 비스무리한 것도 담겨있는것 같아요.

    2012.08.17 16:09 [ ADDR : EDIT/ DEL : REPLY ]
  8. 한없이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띄어지네요 ^^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2012.08.17 16:41 [ ADDR : EDIT/ DEL : REPLY ]
  9. 집착과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죠. 특히나 사진은 머리와 마음의 생각이 전달되서 나타나기때문에 더욱 솔직하고 정직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니 걱정근심이 다 사라지는 것만 같네요~! 늘 선배/마루토스님 포스팅을 보며 교훈 하나씩 배워가는 것 같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12.08.17 18:56 [ ADDR : EDIT/ DEL : REPLY ]
  10. 어린이들의 순수함이 어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거 같아요. ㅎㅎ

    2012.08.17 19: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비밀댓글입니다

    2012.08.17 23:17 [ ADDR : EDIT/ DEL : REPLY ]
  12. june

    멋진말씀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참 당연한건데....쉽지 않지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이가 너무 밝은 웃음 짓는게 저까지 기분좋아지는 웃음입니다. 좋은 글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2012.08.18 00:28 [ ADDR : EDIT/ DEL : REPLY ]
  13. 궁내동 봉추

    그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전 젊은 시절 사진을 포기 했었습니다. 편하게(?) 살려고요. ㅎ~

    2012.08.18 14:23 [ ADDR : EDIT/ DEL : REPLY ]
  14. 유나파더

    좋은글잘보고갑니다
    포기한다는거 너무마음에와닿습니다
    지리산에놀러오면서 카메라 놔두고왔습니다 핸드폰카메라믿구요 예전같으면아이들찍는다고 챙겨왔을텐데요 남겨야할것은 시진이아니라 아이들의마음인것같아요 아빠와즐거웠던추억말이어요

    2012.08.18 20:18 [ ADDR : EDIT/ DEL : REPLY ]
  15. 삼단변심

    아빠진사의 바이블이네요~~ +_+

    2012.08.19 16:29 [ ADDR : EDIT/ DEL : REPLY ]
  16. 성내동

    정말 옳으신 말씀이고 공감합니다

    2012.08.25 20:32 [ ADDR : EDIT/ DEL : REPLY ]
  17. 깽알신랑

    머 사진을 잘못찍으니..
    놀아주기라도해야..
    나중에 구박 덜받는다는..
    ㅜㅜ 눙물이..ㄷㄷㄷ

    2012.08.25 20:53 [ ADDR : EDIT/ DEL : REPLY ]